한 입을 삼키는 데 10분, 플레처의 씹기 철학
– ‘꼭꼭 씹어 먹어라’의 끝판왕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
"꼭꼭 씹어 먹어라."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도 음식을 10번도 채 못 씹고 넘기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결과는요? 자주 체하고, 속이 더부룩하죠.
혹시 저만 그런가요?
반면 최근 한 방송에서 소식가인 박소현 씨가 김밥 한 줄을 5분 동안 씹는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요.
그걸 보고 저처럼 "와, 오래 씹네!"라고 놀랐다면…
잠시만요. 오늘 소개할 이 사람을 알게 되면 그 놀라움은 ‘애교 수준’ 일지도 모릅니다.
호레이스 플레처(Horace Fletcher, 1849.08.10~1919.01.13).
그는 한 입을 무려 700번 이상 씹었다고 합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에요. 삼키지도 않고 뱉기도 했고, 심지어 변 상태로 건강을 평가했답니다.
이게 단순한 괴짜 이야기일까요?
놀랍게도 그는 이 방식을 ‘플레처 다이어트’라 이름 붙이며,
미국과 유럽을 휩쓴 19세기 씹기의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한 입에 10분, 다이어트는 턱근육부터?
이제 그의 씹기 철학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씹기의 철학자, 입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하다
호레이스 플레처(Horace Fletcher)는 단순한 건강광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씹기”를 인생의 중심 철학으로 바꾼 사람이었죠.
40대 초반, 그는 만성 소화불량과 비만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평균보다 체중이 많이 나갔고, 속은 늘 더부룩했으며, 에너지가 부족해 일상조차 버겁다고 느꼈죠.
하지만 병원도, 약도, 다이어트 식단도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가 택한 방법은 아주 단순했어요.
“그냥, 더 오래 씹어보자.”
그는 음식을 최대한 오래 씹으며 실험을 시작했고,
결국 “음식은 액체가 되어 스스로 목으로 미끄러질 때까지 씹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빵 한 조각을 100번, 때로는 700번까지 씹는 습관은 여기서 시작됐죠.
그는 이 씹기 방식으로 체중을 줄이고, 활력을 되찾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철학은 이름을 갖게 됩니다. 바로, ‘플레처 다이어트’.
이전 프란츠 카프카의 '100번씹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바로 그 카프카가 영향을 받은 철학이 바로 이 '호레이스 플레처'의 '플레처리즘'이었습니다.
🫤 “씹기만 했을 뿐인데”… 입으로 만든 기적?
플레처는 늘 말했습니다.
“적게 먹어도 더 강해질 수 있다.”
그의 플레처 다이어트는 칼로리 제한도, 식단 제한도 없었어요.
오직 씹기.
그런데 놀라운 건, 그가 실제로 체중 감량에 성공했고,
오히려 운동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일화에 따르면, 플레처는 육군 사관생도들과 체력 대결을 벌였습니다.
플레처 팀은 전원 40~60대였지만, 결과는 그의 팀의 승리.
그는 이를 통해 씹기의 힘이 몸 전체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죠.
게다가 그가 내세운 또 하나의 '건강 지표'는 놀랍게도 ‘대변’이었습니다.
플레처는 건강한 배변은 “냄새도 없고, 양도 적고, 마른 재(ash)처럼 나와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변을 유리병에 담아 과학자와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어요.
그는 그것이 음식의 영양소를 완전히 흡수했다는 증거라고 믿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당대에는 과학적 실험과 건강 캠페인으로까지 확대되었죠.
‘천천히 오래 씹기’는 그저 식습관이 아니라,
그에게는 몸 전체를 바꾸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꼭꼭 씹으면 뭐가 달라질까?
플레처는 단순히 오래 씹는 게 ‘소화에 좋다’ 고만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는 오래 씹을수록 음식의 맛이 더 풍부해지고, 먹는 양은 자연히 줄며,
과식 없이도 포만감이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그가 씹었던 방식은 오늘날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과도 닮아 있습니다.
오감을 열고 천천히 먹으며, 음식의 질감·향·온도에 집중하는 식사법이죠.
현대 영양학도 이런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을 포함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음식을 오래 씹을수록 뇌에 포만감 신호가 더 빨리 전달되고, 총섭취량도 감소한다고 해요.
또한, 오래 씹으면 침의 분비가 늘어나면서 소화 효소가 활성화되고,
위장 부담이 줄어 소화가 쉬워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플레처가 믿었던 “한 입에 700번”은 과할 수 있지만,
한 입에 20~40번씩 씹는 습관은 오늘날에도
과식 예방, 다이어트, 소화 건강에 유효한 방법으로 권장되고 있습니다.
🎯 21세기 식탁에도 남은 ‘씹기의 철학’
플레처의 ‘오래 씹기’ 철학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물론 ‘700번 씹기’는 극단적이지만, 그의 핵심 원칙은 현대 건강법에 녹아들어 있죠.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
그리고 ‘직관적 식사법(intuitive eating)’입니다.
이들 모두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건 다음과 같아요:
- 천천히 먹을 것
- 음식의 향, 맛, 질감에 집중할 것
- 진짜 배고플 때만 먹을 것
- 감정으로 먹지 말 것
즉, 플레처 다이어트는 ‘씹는 습관’만이 아니라
식사 자체를 하나의 ‘의식(儀式)’으로 인식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거예요.
실제로 다수의 영양학 연구에서도,
천천히 오래 씹는 습관이 체중 조절, 소화 기능,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플레처는 ‘의학’보다는 ‘몸의 감각’을 믿었던 인물이었죠.
🧾 오늘의 인사이트: 먹는 법을 바꾸면 삶도 바뀐다
호레이스 플레처는 한 입의 음식을 수백 번 씹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사는 생존이 아니라 예술이며, 철학이다.”
플레처 다이어트는 지금 봐도 낯설고, 때로는 극단적입니다.
하지만 그 핵심에는 우리가 너무 자주 잊고 사는 원칙이 숨어 있습니다.
‘천천히, 충분히, 그리고 집중해서 먹자’는 것.
우리는 너무 빨리 먹고, 너무 많이 먹고, 때로는 배고프지도 않은데 먹습니다.
하지만 진짜 건강은 ‘먹는 방식’에서 시작된다는 걸
플레처는 100년 전에 이미 꿰뚫어 봤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의 식사는 어땠나요?
몇 번이나 씹으셨나요?
혹시, 씹기도 전에 삼키고 있진 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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