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인물사

혁명가의 식탁, 체 게바라의 생존 레시피

건강리포터 2025. 8. 15. 00:15

혁명가의 전투식단, 캠핑 감성으로는 못 버틴다

– 게릴라 전투식단과 천식을 안고 살았던 체 게바라의 식탁

SNS에서 캠핑이나 백패킹 먹방이 유행이죠.

불 위에 올린 통조림, 즉석에서 구운 고기, 바나나잎에 싼 음식…

마치 ‘자연인’ 라이프처럼 보이지만, 이걸 매일 먹어야 한다면 어떨까요?
쿠바 혁명의 상징,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 1928~1967)는 진짜로 그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도 총성과 험한 산 속에서요.

귀족 집안 출신이었지만, 그는 고급 요리 대신 삶은 말랑가(타로), 풋바나나, 통조림 소시지, 심지어 구운 뱀까지 먹으며 버텼습니다. 심한 천식 환자였음에도 말이죠.

동료들은 그를 ‘엘 찬초(El Chancho, 돼지)’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유요? 썩은 고기도 거리낌 없이 집어먹었으니까요.

오늘은 총보다 숟가락을 먼저 든 혁명가, 체 게바라의 식탁을 열어보겠습니다.

체 게바라의 식단

 

🍽️ 생존이 만든 혁명가의 식탁

체 게바라의 식습관은 혁명가로서의 생활환경과 그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쿠바 혁명 당시, 그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장기간 게릴라 생활을 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식사는 말 그대로 ‘생존식’이었죠.

신선한 재료는 거의 없었고, 주식은 삶은 말랑가(타로 뿌리)와 풋바나나였습니다.

운이 좋으면 통조림 소시지말고기, 심지어 보아 뱀을 구워 단백질을 보충했습니다.

식량이 부족할 땐 상한 고기도 손으로 집어먹었는데,

이런 습관 때문에 동료들이 ‘엘 찬초(El Chancho, 돼지)’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는 귀족 집안 출신임에도 음식에 까다롭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동료들과 똑같이 식사했고, 대우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음식의 맛이나 품질보다 공동체의 연대와 혁명 활동이 우선이었죠.

그의 특별한 ‘애정 메뉴’는 검은콩 요리(블랙빈)였습니다.

큰 그릇 하나를 혼자 다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는 증언이 남아 있습니다.

쿠바 혁명 이전 오토바이로 남미를 여행할 때도,

그는 값싸고 토속적인 음식—예를 들어 소 내장 요리(트리파)—를 즐기며 지역 주민들과 식사를 나눴습니다.

 

🥗 극한 식단과 건강의 줄다리기

체 게바라의 식단은 철저히 환경에 맞춘 생존식이었지만, 그의 건강에는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습기 많은 정글과 차가운 산속에서의 불규칙한 식사는 그의 호흡기에 큰 부담이었습니다.

게바라가 먹었던 주식인 말랑가, 풋바나나, 콩은 장기간 버틸 수 있는 탄수화물·식이섬유 공급원으로 괜찮았지만,

단백질과 비타민, 필수 지방산은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이런 영양 불균형은 만성 피로와 체력 저하를 불러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음식을 가려 먹거나 보충제를 챙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엇이든 있는 대로 먹는다’는 태도로, 환경에 맞춘 적응력을 발휘했습니다.

검은콩 요리는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귀중한 원천이었고,

뱀이나 야생동물 고기는 고단백 식품으로 체력을 버티게 해주었습니다.

현대 영양학 관점에서 보면, 그의 식단은 단기 생존에는 효과적이지만, 장기 건강에는 위험이 컸습니다.

특히 고칼로리·고단백 식품을 불규칙하게 섭취하는 패턴은 면역력 약화와 호흡기 질환 악화를 부를 가능성이 높았죠.

 

🍲 천식과 혁명, 그리고 마지막 식사

체 게바라는 평생 중증 천식과 함께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발작이 심해 산소 흡입기에 의존해야 했고,

게릴라 생활 중에도 천식 발작은 그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럭비, 오토바이 여행, 산악 행군 등 격렬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죠.

그의 건강을 갉아먹은 건 병만이 아니었습니다.

산속에서의 불규칙한 식사, 영양 결핍, 열악한 위생 환경이 천식을 악화시켰습니다.

특히 비위생적인 물과 상한 음식 섭취는 장기적으로 면역력을 떨어뜨렸고,

호흡기 감염에 더 취약하게 만들었습니다.

1967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던 그는,

정부군에 포위돼 탈출로가 막힌 상태에서도 여전히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나눴습니다.

생포되기 직전 그의 마지막 식사는 볼리비아 전통 음식인 소파 데 마니(Sopa de Maní, 땅콩수프)였다고 전해집니다.

생포 후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나이는 39세.

사인은 총상이었지만, 당시 목격자들은 이미 그는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고,

잦은 천식 발작으로 쇠약해져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의 건강은 혁명이라는 삶의 방식과 맞바꾼 대가였던 셈입니다.

 

⚖️ 현대적 분석 – 생존식과 가치의 균형

현대 영양학 관점에서 보면, 체 게바라의 식습관은 지속 가능한 건강식이라기보다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 전략에 가깝습니다.

탄수화물 중심의 말랑가와 바나나는 단기 에너지원이 되었지만,

단백질·지방·미량영양소의 결핍은 장기 건강을 크게 해쳤습니다.

천식 환자인 그에게 이런 영양 불균형은 면역력 약화, 호흡기 감염 위험 증가, 회복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불결한 환경에서의 식사는 기생충 감염, 장 질환, 체중 감소를 가속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건강 관점에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게바라에게 식사는 생존 이상의 의미, 즉 혁명과 공동체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특권적이고 사치스러운 식사를 거부했고, 동지들과 같은 음식을 나누며 평등과 연대를 실천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로컬푸드·제로웨이스트·공동체 식탁’의 원조 격이죠.

결국 체 게바라의 식습관은 영양학적으로는 불완전했지만,

그가 지향한 사회적·정치적 가치와는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이는 건강한 식단이 반드시 영양학적 완벽함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점,

때로는 가치와 맥락이 음식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 오늘의 인사이트: 생존의 식탁, 그리고 가치의 무게

체 게바라의 식탁은 맛과 영양보다는 생존과 신념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삶은 말랑가, 풋바나나, 검은콩, 통조림, 뱀고기…

이 소박하고 거친 식사들은 그를 건강하게 만들진 못했지만,

혁명가로서 끝까지 버틸 힘과 공동체의 결속을 지탱했습니다.

그의 사례는 오늘날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줍니다.
하나는, 아무리 바쁘고 힘든 상황에서도 내 몸을 지킬 영양 관리는 필수라는 것.
또 하나는,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관계를 나누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식탁은 어떤가요?

균형 잡힌 영양과 함께, 그 음식이 가진 의미도 곱씹어 보셨나요?
건강을 위해 먹는 것인지, 아니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먹는 것인지—그 답은 식탁 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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