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인물사

'먹깨비' 허균: 식도락에 대한 지극한 열정

건강리포터 2025. 7. 25. 00:24

“허균은 조선의 미식 칼럼니스트였다?”

– 벼슬보다 새우와 게를 택한 자유로운 영혼의 식도락기

“맛은 영원히 즐거운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죠? 요즘 떠오르는 미식 유튜버나 셰프의 어록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이 말은 400여 년 전 조선 시대의 문인이자 혁명가였던 허균의 세계관이었습니다.
그는 『홍길동전』의 저자, 유배와 파직을 거듭한 개혁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의 최초 맛 칼럼니스트, 허균의 숨겨진 식도락 라이프.
그는 권세나 명예보다, 새우 한 접시와 싱싱한 생선 한 토막을 더 귀하게 여겼던 진짜 ‘맛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자, 지금부터 조선의 대표 ‘미식 탐험가’ 허균의 맛있는 인생을 따라가 볼까요?

미식 탐험가이자 한국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 허균

 

📌 “먹는 것밖에 탐내는 게 없다”… 그가 직접 고백한 미식가 인생

허균은 자신의 식탐을 전혀 숨기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에게 “나는 오직 먹는 것만 탐낸다”고 당당히 말할 정도였죠.
요직 제안에도 “게랑 생선 많은 데로 보내주세요”라는 태도였고, 유배지를 고를 때조차 새우와 게의 품질을 따졌습니다.
전라도 함열로 유배를 갔을 땐, “부안 새우나 벽제 게보다 못하니 굶어 죽겠다”며 투덜거렸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수령이 귀한 생선을 보내주자 아홉 번 절을 올렸다는 표현까지 남겼습니다.
벼슬길을 마다하고 지방으로 떠돌아다닌 것도 사실 대우 때문이 아닌 ‘음식’ 때문이었습니다.
“경주목사보다 게가 많은 가림이 좋겠다”는 그의 편지에서, 그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나죠.

“좋은 음식을 앞에 두면 벼슬도 잊었다”

조선 미식가 허균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했습니다. 

 

🍽 명문가 출신 + 아버지의 입맛 = 미식 DNA의 뿌리

허균의 미식가적 기질은 타고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조선 중기의 유복한 양반가에서 태어났고, 집안 자체가 ‘맛잘알’이었어요.

  • 아버지 허엽은 ‘초당두부’의 창시자로 불릴 만큼 식재료에 정통한 인물.
  • 형 허성 또한 미식에 관심이 깊었고,
  • 절친한 누이 허난설헌, 형 허봉의 죽음 이후 허균은 정신적 공허함을 음식으로 달랬습니다.

즉, 입맛 좋은 집안에 태어난 데다, 마음속 결핍까지 음식으로 채운 삶이었던 거죠.
허균에게 음식은 ‘호사’가 아닌, ‘치유’이자 ‘인생의 낙’이었습니다.

 

 

🐟 “그 생선, 삼척에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입맛은 전국구였다

허균은 단순히 맛있는 걸 먹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선 전역의 특산물과 제철 해산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식안을 지녔습니다.

  • 삼척의 귀한 생선,
  • 함흥의 감,
  • 각지의 새우, 게, 어패류…

그의 편지와 글엔 마치 요즘 맛집 유튜버처럼 생생한 품평이 남아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대하면 감탄과 감사를 아끼지 않았고, 그 맛을 글로 남겼죠.
그 열정이 집대성된 결과물이 바로 조선 최초의 맛 리뷰집…

『도문대작(屠門大嚼)』.
— “도살장 앞에서도 크게 씹는다”는 제목부터 남다른 이 글은
쇠고기부터 돼지고기, 생선, 과일까지 17가지 이상의 식재료를 소개한 **조선판 ‘식재료 백과사전’**입니다.

 

✍️ 『홍길동전』보다 『도문대작』?

– 허균, 맛으로 남은 작가

우리는 허균을 『홍길동전』의 작가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자, 음식 문화사에 남은 업적은 단연 『도문대작』입니다.

  • 평안도, 함경도의 지방 음식을 분석하고,
  • 감의 품종 차이까지 논할 정도로 섬세했으며,
  • 심지어 지방별 음식 맛의 차이를 문화적으로 해석합니다.

이런 면모는 그를 단순한 ‘식도락가’를 넘어, 맛의 철학자로 만들어줍니다.

“홍길동전보다 『도문대작』이 더 먹어줄 겁니다.”
— 후대 학자들이 남긴 말처럼, 허균은 조선 최초의 음식 칼럼니스트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 맛은 그의 자유였다 — 조선의 자유로운 식욕가, 허균

허균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벼슬을 마다하고, 음식 있는 곳을 좇고, 생선 한 토막에 아홉 번 고개를 숙일 줄 알았던 사람.
그에게 ‘맛’은 허세도, 자랑도 아닌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한때 “건강이 악화되어 더는 관직을 맡을 수 없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이야기였고, 결국 다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평생을 두고 보면 허균은 큰 병 없이 말년까지 삶을 즐긴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인 그 태도가
오히려 몸과 마음을 오래도록 건강하게 지켜준 비결이 아니었을까요?

그가 말했듯,
“맛은 영원히 즐거운 것이다.”

 

🧾 오늘의 인사이트: “ 진짜 맛있는 인생을 살고 있나요? ”

허균은 벼슬도, 체면도 내려놓고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즐길 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미식은 단순한 식탐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죠.


어느샌가 음식이 기쁨이 아니라 계산이 된 순간, 삶도 맛을 잃는 건 아닐까요?

 

💡 오늘 당신의 식탁은 어떤가요?

무엇을 먹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음식을 먹는 당신의 마음 상태는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허균은 말합니다.
“맛은 영원히 즐거운 것이다.”
그 즐거움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건강한 인생의 비결 아닐까요?

 


👉 이전 인물 보러 가기 

[식탁 위의 인물사-4] '국민약골' 영조, 저속노화 식단으로 조선 최장수왕이 되기까지

 

'국민약골' 영조, 저속노화 식단으로 조선 최장수왕이 되기까지

"영조는 저속노화 인플루언서였다?"– 300년 전 조선 최고령 왕의 안티에이징 비밀"잡곡밥, 튀김 사절 그리고 금주금연"이거 요즘 헬스 유튜버 루틴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바로 조선의 21대 왕 영

howstoda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