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인물사

강박천재 하워드 휴즈의 세상 불편한 식사

건강리포터 2025. 8. 4. 06:30

🧼 완두콩 12알에 집착한 천재?

– 강박과 결벽 사이, 하워드 휴즈의 식탁

식사 전 손부터 두세 번 씻으시나요?
누가 먹던 포크,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시나요?

누군가에겐 그냥 ‘예민함’일 수도 있지만,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 1905.12.24~1976.4.5)에겐 이 식사의식은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갑부, 영화 제작자, 항공 혁신가…
천재적 성취의 이면엔 매 끼니가 공포와 의식의 반복이었던 한 남자의 초상이 있습니다.

완두콩은 12알이 정확히 같아야 했고,
모든 식기는 셀로판으로 포장된 상태에서 건네져야 하며,
그는 식사 매뉴얼을 수십 페이지로 만들어 비서에게 교육시켰습니다.

바나나넛 아이스크림만 1,300L 쌓아놓고 며칠 후 통째로 버렸다는 전설도 있어요.

이제부터 우리가 몰랐던 또 하나의 ‘식탁 위의 인물사’,
결벽과 강박으로 점철된 하워드 휴즈의 식생활
정신의학적 관점과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하워드 휴즈의 강박 식습관

 

🫛 강박 식사의 시작: 완두콩 12알과 스테이크 의례

하워드 휴즈의 식습관은 '기호'나 '식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강박적 의례 행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스테이크 + 완두콩 12알”입니다.

휴즈는 평생 가장 선호한 식사로 ‘버터플라이 커트’로 정교하게 썬 스테이크와,
크기와 색이 동일한 완두콩 12알만을 일렬로 배열해 먹는 식사 의식을 고수했습니다.
완두콩의 크기가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개수가 정확하지 않으면,
그는 음식을 거부하고 다시 준비시켰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미각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수년간 앓은 결벽증(OCD)의 전형적 증상—‘의례 행동(ritualistic behavior)’—이 식사에 스며든 것입니다.

이러한 ‘의례적 식사’는 그에게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겐 수십 장짜리 식사 지침서고도의 스트레스를 안겨주었죠.
비서들은 음식의 배치, 스테이크의 조리법, 수저의 포장 방식까지 모두 메뉴얼대로 암기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신체 접촉 공포’나 ‘오염 공포’로 인해 휴즈는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 식사가 아니라 의식 

하워드 휴즈에게 ‘먹는 행위’는 생존이 아니라 통제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먹을 모든 음식과 조리 도구, 심지어 수저의 손잡이까지
셀로판과 종이로 수겹 포장된 상태에서만 받아들였습니다.

주방 직원들은 반드시 고무장갑과 마스크, 위생복을 착용해야 했고,
조리 도중에는 음식을 맨손으로 절대 만지지 못했습니다.
과일 통조림을 여는 방법부터,
우유를 컵에 따르는 각도,
서빙 후 음식을 옮기는 손의 동선까지,
모든 것이 수십 페이지짜리 위생 지침서에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놀라운 건,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음식을 통째로 버리는 건 물론,
직원을 해고하거나 며칠간 식사를 거부하는 일도 흔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휴즈는 라스베이거스로 이사한 이후에도,
예전 요리사에게 스테이크를 조리해 비행기로 배달받는 시스템까지 만들었습니다.
식사는 이제 공포와 신경전, 의식과 강박이 얽힌 행위였고,
음식 그 자체는 더 이상 목적이 아니었죠.

🍫 영양실조로 이어진 식습관과 심신 붕괴

하워드 휴즈의 식사는 점점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로 굳어졌습니다.
그가 말년에 가장 자주 섭취했던 건
초콜릿 바, 우유, 오렌지 주스, 그리고 닭고기.
한 가지 음식에 집착적으로 몰두하다가,
며칠 후 완전히 바꾸고 또 몰입하는 식이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라스베이거스 호텔에 머물며
배스킨라빈스 바나나넛 아이스크림만 1,300L(350갤런) 주문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며칠 후, 그는 갑자기 프렌치 바닐라만 먹겠다고 고집했고,
호텔 측은 쌓아둔 바나나넛 재고를 모두 손님에게 나눠줘야 했죠.

문제는, 이같은 단일 식단이 단순한 취향을 넘어
장기적인 영양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점입니다.

  • 필수 영양소 결핍
  • 만성적인 체중 감소
  • 심각한 변비와 소화 장애
  • 면역력 저하로 잦은 감염
  • 신체 기능 쇠약과 노쇠한 외형

말년의 하워드 휴즈는 뼈만 남았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수척했고,
손톱과 발톱은 수년간 자르지 않아 휘어졌으며,
약물 중독(코데인)과 맞물려 신체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그의 식습관은 결국, 그를 천재로 만든 두뇌와 신체마저 파괴한 요인이었습니다.

🧠 현대 정신의학이 말하는 ‘하워드 휴즈 식단’의 본질

하워드 휴즈의 식습관은 현대 정신의학에서 보면
단순한 '예민함'이나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 정신질환의 대표 사례로 간주됩니다.

정신의학자들은 그가 보인 행동들을
심각한 강박장애(OCD)와 병적 결벽증의 복합 증상으로 해석합니다.

  • ‘완두콩 12알’은 정해진 수와 배열을 반드시 지켜야 안심할 수 있는 의례행동
  • ‘셀로판 포장 수저’는 오염 공포로 인한 강박적 회피 반응
  • ‘수십 장짜리 음식 매뉴얼’은 세상 모든 변수를 통제하려는 완벽주의적 방어기제

이러한 식사 행위는 영양을 섭취하기 위한 목적보다
불안을 조절하고, 세상과의 접촉을 차단하려는 심리적 장벽으로 기능했습니다.

더 나아가, 의료진은 휴즈의 이러한 행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화되며
사회적 고립, 신체 기능 저하, 정서적 붕괴까지 초래했다고 평가합니다.

결국, 식습관은 휴즈의 건강을 망가뜨린 것 이상의 문제였습니다.
그의 ‘식탁’은 삶 전체를 지배한 의식과 공포의 무대였고,
그가 가진 모든 통제력은 음식 앞에서만큼은 스스로의 감옥이 되었던 셈이죠.

🧾 오늘의 인사이트: “식탁 위의 통제는 나를 지킬까, 가둘까?”

하워드 휴즈는 세계를 뒤흔든 천재이자,
음식 앞에서 가장 고립된 인간이었습니다.

스테이크와 완두콩 12알,
셀로판에 싸인 수저,
1,300L의 아이스크림과
세상에서 가장 철저한 식사 매뉴얼.

그의 식습관은 결벽증과 강박장애의 확장된 표현이었고,
마침내 그를 세상과 단절시킨 의례적 감옥이 되었습니다.

 

오늘 당신의 식탁은 어떤가요?

음식을 선택하는 그 순간,
혹시 나도 무의식적인 불안이나 통제 욕구에 끌려가고 있지는 않나요?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식단이
오히려 나를 구속하는 틀이 되지는 않는지,
오늘 한 끼는 조금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대할 수 있길 바랍니다.

완벽한 식탁보다, 편안한 식탁이 당신을 더 오래 지켜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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