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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 실험: ‘착한 사람’보다 ‘바쁘지 않은 사람’이 남을 돕는다

건강리포터 2025. 10. 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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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좋은 사람’이어도 돕지 못할까? —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의 교훈

 

혹시 길을 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도, ‘바쁘다’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한 적 없으신가요?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혹은 처리할 일이 급해서 애써 외면했던 순간 말입니다.

그리고는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이 남습니다. ‘나는 왜 그냥 지나쳤을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곤경에 처한 이를 보면 돕고 싶어 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죠.

하지만 현실 속 우리의 행동은 그 마음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대체 왜 이런 간극이 생기는 걸까요?

놀랍게도, 이 오래된 딜레마에 대한 답을 주는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있습니다.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입니다.

이 실험은 우리가 남을 돕고, 돕지 못하는 행위의 이면에 있는 충격적인 진실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당신의 인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왜 우리는 ‘좋은 사람’이어도 돕지 못할까?

 

무엇이 ‘선한 행동’을 만드는가?

1973년,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두 심리학자 존 달리와 대니얼 뱃슨은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의 선한 행동, 즉 돕는 행동은 그 사람의 신념이나 인성에서 비롯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그들은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주 독창적인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참가자인 신학생들은 각자 설교 발표를 준비하라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설교 주제였습니다.

절반의 학생들은 직업윤리처럼 일반적인 주제를, 나머지 절반은 다름 아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해 설교를 준비해야 했죠.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인 이야기.

연구자들은 이 주제를 되새긴 학생들이 실제로도 더 선한 행동을 보일지 궁금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변수, ‘시간 압박’

설교 주제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 변수는 바로 ‘시간 압박’이었습니다.

연구진은 학생들이 설교 장소로 이동하기 직전, 세 그룹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 고압박 그룹: "이런, 이미 늦었네요. 서둘러 가야 합니다!"
  • 중간압박 그룹: "이제 곧 시작할 시간이니, 슬슬 출발하는 게 좋겠어요."
  • 저압박 그룹: "아직 시간이 충분하니, 잠시 후에 천천히 가셔도 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동하는 길목에는 한 배우가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떠올리며 걸어가다가, 현실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마주하게 된 것이죠.

과연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신학생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충격적인 결과, ‘인성’의 배신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학생들의 돕는 행동을 결정한 것은 그들의 인성이나 설교 주제가 아닌, 오직 ‘시간’이었습니다.

  • 시간 여유가 있던 그룹에서는 무려 63%가 쓰러진 사람을 도왔습니다.
  • 시간이 보통이었던 그룹에서는 45%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 하지만 매우 바빴던 그룹에서는 단 10%만이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선한 사마리아인’ 설교를 준비하던 학생들과 일반 주제를 준비하던 학생들 사이에 도움을 주는 비율 차이가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즉, 머릿속으로 아무리 선한 가치를 되새겨도, 몸이 바쁘면 그 가치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심

지어 일부 학생들은 쓰러진 사람을 보면서도 넘어가지 않으려 조심하며 지나가거나, 아예 무시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은 이처럼 ‘상황’이 개인의 신념을 얼마나 쉽게 무력화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상황’이 있을 뿐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내면의 성향보다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라는 외부 요인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상황심리학(Situationism)’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인성을 쉽게 판단해 버립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이를 보면 ‘착한 사람’이라 칭찬하고, 지나치는 이를 보면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죠.

하지만 이 실험은 그러한 판단이 얼마나 섣부른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착한 마음을 가진 신학생조차 극심한 시간 압박 앞에서는 이타심을 발휘하지 못했으니까요.

이것은 우리에게도 큰 위안을 줍니다.

혹시 과거에 누군가를 돕지 못하고 지나친 경험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면, 그건 당신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저 ‘도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을 뿐이죠.

바쁜 도시 속에서 쓰러진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이 주는 교훈인 돕는 행동과 시간적 여유의 중요성

🧠 여유가 도덕심의 전제조건

“왜 바쁠 땐 남을 볼 여유조차 없어질까?”
이건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생존 전략 때문이에요.

우리 뇌는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 ‘생존 모드’로 전환됩니다.
이때 가장 먼저 활성화되는 곳이 편도체(Amygdala)예요.
편도체는 공포, 긴장, 위기 감지를 담당하죠.
즉, 머릿속이 “늦었다!”, “망했다!”, “빨리 가야 돼!”로 가득 차면
뇌는 타인의 고통보다 자기 생존을 우선순위로 둡니다.

반면,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판단력과 공감, 윤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뇌의 ‘이성 센터’예요.
문제는 이 부위가 스트레스나 시간 압박을 받으면
기능이 ‘임시정지’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

그래서 그 순간엔,
‘도와야겠다’는 생각조차 처리할 인지 자원이 부족해져요.
이걸 심리학에서는 주의 집중 협소(Attentional Narrowing)라고 부릅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감정도 단순해지고,
결국 타인의 고통은 우리의 ‘화면 밖’으로 밀려나 버리죠.

바쁜 도시 거리에서 쓰러진 노인을 지나치는 정장 차림의 남성,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이 보여주는 시간 압박과 무관심

 

즉, 여유는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닙니다.
도덕심이 작동할 물리적 공간이자, 뇌의 여백이에요.
마음이 아니라 ‘뇌의 자원’이 고갈되면,
선한 의도도 길을 잃습니다.

생각해보면,
도움을 주는 사람은 언제나 ‘시간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들은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여유를 의식적으로 확보해둔 사람들이죠.

 

결국, ‘착한 사람’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일정표 속에 여유를 남겨두는 사람이에요.
조금 덜 바쁘게 사는 게
세상에 더 많은 따뜻함을 남기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 오늘의 인사이트: ‘착한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 ‘바쁘지 않은 사람’이 되어주세요.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선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당신은 타인을 도울 만큼 삶의 여유가 있는가?”라고 말이죠.

우리는 곤경에 처한 타인을 외면했을 때 스스로를 자책하고, 남을 비난하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이 실험은 그 화살을 개인의 인성이 아닌 ‘상황’으로 돌리게 합니다.

어쩌면 진정으로 선한 사회는 ‘착한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는 사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신, 서로에게 잠시 멈춰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는 사회일 겁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떤가요?

혹시 무언가에 쫓겨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이 실험은 우리에게 ‘빨리’ 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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